종 목 : 사적 제149호
명 칭 : 육상궁(지상건물일체포함) 毓祥宮(地上建物一切包含)
분 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제사유적 | 제사터
수량|면적 : 25,791㎡
지 정 일 : 1966.03.22
소 재 지 : 서울 종로구 궁정동 1-1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국유
관 리 자 : 경복궁
칠궁은 조선왕조 500년 동안 왕의 사친(私親: 임금의 생모)이지만 왕비에 오르지 못한 일곱 후궁의 신위를 모셔놓은 사당이다.
왕의 친모나 미즉위 왕세자 등의 사묘(祠廟)를 궁(宮)·전(殿) 또는 묘(廟)로 호칭하는 등 여러 종류가 있었으나, 지금에 전하는 것은 칠궁 정도이다. 궁은 왕세자·비빈 등의 거소를 호칭하는 것이나, 그들이 사망한 뒤 그대로 사묘로 사용한 데서 사묘의 칭호에 궁이 붙게 된 것 같다.
현재 종로구 궁정동 청와대 경내에 자리한 칠궁은 일곱 후궁의 사당이지만, 원래 이곳은 숙종의 후궁이자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사당인 숙빈묘(淑嬪廟)로 1725년(영조원년)에 세워졌으며 1744년(영조20년) 육상묘(毓祥廟)로 개칭되었고, 그 후 1753년(영조29년) 육상묘를 육상궁(毓祥宮)으로 묘(廟)에서 궁(宮)으로 개칭하면서 묘소는 원(園)으로 승격시켰다.
그 후 1908년(융희 2년)에 저경궁(儲慶宮)·대빈궁(大嬪宮)·연호궁(延祜宮)·선희궁(宣禧宮)·경우궁(景祐宮)이 육상궁의 경내에 합사(合祀)됨으로써 육궁(六宮)이 되었고, 다시 1929년 덕안궁(德安宮)이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칠궁이 되었으며, 공식 명칭은 육상궁(毓祥宮)이다.
그리고 이 칠궁은 송죽재(松竹齋)와 풍월헌(風月軒), 삼락당(三樂堂) 그리고 냉천정(冷泉亭)과 냉천(冷泉), 이안청(移安廳), 전사청(典祀廳), 헌관집사청(獻官執事廳), 수복방(守僕房), 재실(齋室), 자연(紫淵) 등의 부속시설이 포함되어 있다.
정선필육상묘도(鄭歚筆毓祥廟圖) 1739년(영조 15년) 보물 제873호, 개인 소장
정선(鄭敾) 장안연우(長安煙雨) 1741년(영조 17년) 서울 간송미술관 소장『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내
|
육상궁(毓祥宮)과 연호궁(延祜宮)은 한 사당에 같이 합사되어 있고, 서쪽 담장 안으로는 저경궁(儲慶宮), 대빈궁(大嬪宮), 선희궁(宣禧宮), 경우궁(景祐宮), 덕안궁(德安宮)이 있으며 선희궁과 경우궁도 한 사당에 신주를 같이 모셔놓았으며, 매년<보통 10월4째주 월요일>「칠궁제」를 지내고 있으며, 세계문화유산인 종묘(宗廟)와 함께 묘사(廟祠)제도의 귀중한 표본으로 인정받아 1966년 사적 제149호로 지정되었다.
육상궁 정문인 외삼문(外三門 | 天授門 | 神三門)이다.
현재 이 문은 사용하지 않고 재실 정문을 출입구로 사용한다.
육상궁(칠궁)으로 들어가는 재실 정문이며, 안내 도우미가 보인다.
사진 우측 뒤로 보이는 밝은색 건물이 청와대 국빈 접견소 영빈관이며, 저 방향으로 사진을 찍는 것은 통제한다.
원래 육상궁(칠궁) 권역은 상당히 큰 규모였으나, 저 영빈관을 건립하면서 그 규모를 3분의 1로 축소하였다고 한다.
재실 정문에서 바라본 육상궁(칠궁) 내부, 제일 처음 만나게 될 송죽재와 풍월헌, 그 뒤로 삼락당이 보인다.
송죽재(松竹齋)와 풍월헌(風月軒) 육상궁을 관리하는 관헌이 거처하며, 제사를 준비하던 재실이다.
송죽(松竹)은 소나무와 대나무를 의미하며, 변하지 않는 절개를 상징하는 말이다.사철 푸른 소나무와 대나무처럼 관원들도 재실에 머물며 늘 변치 않는 마음을 가지라는 뜻을 담은 듯하다.
풍월(風月)은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이란 의미이다.
이곳이 재계하는 곳이므로 정신을 깨끗하고 고상하게 가진다는 의미를 담은 듯하다.
|
삼락당으로 통하는 문이 보인다.
삼락당(三樂堂)이다.
삼락당을 휘감고 돌아간다.
내삼문(內三門)이다.
내삼문을 지나 동쪽 삼문과 서쪽 삼문 사이에 있는 냉천정(冷泉亭)이다.
영조가 어머니 제삿날에 재계(齋戒)하며 제를 준비하던 곳이다.
냉천정을 지나는 길목
냉천정 앞 뜰에 있는 자연(紫淵), 냉천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고이도록 석축을 쌓아 만든 정사각형의 작은 연못.
자연(紫淵)은 자줏빛이 감도는 연못이란 뜻이며 자줏빛은 수심이 깊은 연못의 빛깔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런 뜻으로 지은 것은 아니며 '자연'이란 용어는 신선의 세계를 나타내는 도가적인 표현이라고 한다.
정면 석축 한가운데에 紫淵이라 새겨진 각자(刻字).
냉천정 뒤쪽에 있는 우물 냉천(冷泉)이며, '차가운 샘'이란 뜻이다.
냉천 우물 상단 벽면에 영조의 친필(1727, 영조 3년) 냉천과 오언절구(五言絶句 : 오언시) 각자(刻字)가 있다.
御墨雲翰(어묵운한) 임금이 글을 새기다
昔年靈隱中(석년영은중) 옛적에는 영은에 있었고
今日此亭內(금일차정내) 오늘은 이 정자 안에 있네.
雙手弄淸漪(쌍수농청의) 두 손으로 맑은 물 어루만지니
冷泉自可愛(냉천자가애) 냉천이 절로 사랑스럽네.
時强圉協洽?月上浣也(시강어협흡병월상완야) 정미(1727년) 3월 초순.
영은(靈隱)은 중국의 유명한 경승지인 항주(杭州) 서호(西湖)의 서쪽에 있는 영은산을 말한다.
항주의 지사(知事)로 부임한 소동파(蘇東坡)가 이 산의 냉천정(冷泉亭)에서 많은 시를 지었다.
내삼문으로 들어서면 솟을대문이 하나 더 있다.
왼쪽으로 재실(齋室)이 있고, 정면에 덕안궁이 있다.
덕안궁(德安宮) 고종의 후궁이며 영친왕의 생모인 순헌황귀비 엄씨(純獻皇貴妃 嚴氏)의 신위를 모신 사당이다. 1897년(광무 원년)에 엄귀비가 아들을 낳으면서 경운궁 안에 거처할 궁을 세워 그 궁을 경선궁이라 불렀으며, 엄귀비가 세상을 떠나자 덕안궁으로 개칭되었고 1929년에 육상궁 안으로 옮겨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덕안궁 뒤로는 저경궁, 대빈궁, 선희궁, 경우궁이 나란히 있다.
저경궁(儲慶宮) 선조의 후궁이며, 사후 왕의 칭호를 받은 원종을 낳은 인빈 김씨(仁嬪金氏)의 신위를 모신 사당이다. 원종은 선조의 다섯째 아들로서 인조가 왕위에 오른 후 왕의 칭호를 받았다. 인빈이 세상을 떠난 후 원종이 살던 송현궁에 신위를 모시고 저경궁이라 이름 지었다. 이후 저경궁은 1870년(고종 7년)에 계동에 있는 경우궁 안으로 옮겨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경우궁과 선희궁은 같이 봉안되어있다.
경우궁(景祐宮) 정조의 후궁이자 순조의 생모인 수빈 박씨(綏嬪朴氏)의 신위를 모신 사당이다. 수빈은 순조 20년(1820)에 세상을 떠났고, 이듬 해 신주를 창경궁 안에 모시고 현사궁이라 이름 지었다. 이후 현재의 종로구 계동의 양덕방에 따로 묘를 세우고 이름을 경우궁으로 지어 신주를 모셨다. 이후 이 궁은 갑신정변을 겪으면서 현재의 옥인동인 인왕동으로 옮겨졌다가 1908년에 다른 궁들과 함께 육상궁 안으로 옮겨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선희궁 (宣禧宮)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생모인 영빈 이씨(暎嬪李氏)의 신주를 봉안한 묘사(廟祠)이다.
대빈궁(大嬪宮) 숙종의 후궁이자 경종의 생모인 희빈 장씨(禧嬪張氏)의 신위를 모신 사당이다. 숙종 27년(1701)에 희빈이 사망한 후 신위를 정동에 있는 집에 모셨다가 경종 2년(1722)에 희빈에게 옥산대부인의 칭호를 내리면서 사당을 현재의 교동인 경행방에 세웠다. 대빈궁은 고종 7년(1870)에 다시 돌아갔고, 1908년에 다른 궁들과 함께 다시 육상궁 안으로 옮겨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문을 지나면 연호궁과 육상궁이다.
연호궁과 육상궁 입구 삼문.
삼문에서 바라본 연호궁 현액.
연호궁과 육상궁은 합사되어 있다. 밖의 현액은 연호궁으로 걸려있으나 안쪽에는 영조의 친필인 육상묘(毓祥廟) 현액이 걸려있다.
배전(拜殿)과 삼도(三道)
연호궁(延祜宮) 영조의 후궁이며, 사후 왕의 칭호를 받은 진종을 낳은 정빈 이씨(靖嬪李氏)의 신위를 모신 사당이다. 진종은 정빈에게서 태어나 세자로 정해졌지만 10세에 세상을 떠났다. 정조는 즉위 후, 진종에게 왕의 칭호를 주고 정빈을 위해 정조 2년(1778)에 경복궁 서북쪽에 사당을 세우게 하고 연호궁이라 이름 지었다. 연호궁은 고종 7년(1870)에 육상궁 안으로 옮겨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육상궁(毓祥宮) 숙종의 후궁이자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淑嬪崔氏)의 신위를 모신 사당이다. 1725년(영조 원년)에 숙빈 묘라는 이름으로 건립되었으나 1744년(영조 20년)에 육상묘로 개칭하였고, 다시 1753년(영조 29년)에 육상궁으로 개칭되었다. 그 후 1882년(고종 19년)에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다음 해에 다시 복원하여 현재에 이른다.
|
육상궁 담장
중문을 나서면...
처음 들어갈 때 보았던 송죽재와 풍월헌, 삼락당 뒤편으로 나오며 답사를 마치게 된다.
'▣ 역사는 흐른다 > 한국고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칠궁(육상궁) (下) (0) | 2013.04.21 |
---|---|
희빈 장씨 (장옥정) (0) | 2013.04.21 |
왕릉보다 화려 '김유신장군묘' 실제 주인은? (0) | 2012.11.02 |
칠궁(七宮) 육상궁(毓祥宮) (0) | 2009.07.30 |
비가 오면 '陵'이 '墓'로 바뀌는 마술 같은 김유신 장군 묘비석 (0) | 2008.10.29 |